사랑의 가치

Twitter 2018. 10. 6. 00:44







유튜브로 동물 다큐를 자주 찾아본다


묘하게 야생동물의 세계는 그 형태만 달리할 뿐 사람사는 모습과 비슷해서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다


이를테면 짝을 찾는 수컷의 구애 같은것들이다. 


한껏 자기를 화려하게 꾸미고 평소에 안하던짓을 하는게 똑같다.




특히 새끼를 돌보는 동물들의 헌신적인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어떤 경우엔 알만 여러개 낳아두고 살놈만 살아라 하고 떠나버리는 확률게임의 양육방식도 있지만


대부분의 동물은 종을 막론하고 새끼를 정말 정성껏 돌본다.


힘들게 얻은 먹이를 가지고 집에 돌아와 새끼들에게 토해내거나 나눠주는 모습이 우리네 부모님들 같아서 신기하다.


한편으론 사람도 그저 자연법칙 속에 사는 하나의 동물일 뿐이라는 겸손한 마음도 생긴다.




새끼들은 어미의 돌봄을 받으면서 애착관계를 형성한다.


이 시기에 새끼들은 많은것들을 배운다.


형,누나,언니,오빠,동생들과 뛰어놀고 장난치면서 사회성도 자연스레 자라고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훗날 자기들의 새끼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일종의 부모수업을 받는데


이 시기에 부모를 잃은 새끼들은 당연히 죽을수밖에 없고 


구조대가 거둬들여 인공포육을 통해 성체가 되어도


야생으로 돌아가 적응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이러한 점도 사람들 사는 모습과 흡사하다


애착관계 형성의 시기에 어떤 이유에서인가 결핍이 있으면 야생과는 달리 생명을 잃지는 않지만


99%의 확률로 정서적,사회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된다


학창시절 소위 노는 애들, 잘나가는 애들, 반항아, 비행청소년, 문제아 라고 불리웠던 친구들은 그들을 일컫는 말만 다르지


반사회적인 행동을 일삼는 애들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면 대부분 그런 친구들의 공통점은 딱한 가정사가 있었다는 건데 


누구보다 따스한 온정이 필요한 친구들이었다.




사람은 사람들 속, 즉 사회에서 살아갈수밖에 없고 


거기에 필요한 것들은 가장 처음 마주하는 사회인 가족을 통해 갖춰진다. 


따라서 사랑받은 아이가 다른사람을 사랑할줄도 안다.


내가 생각하기에 다른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비이기적이고 희생적이며


배려할 줄 알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알며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과 같은 


고차원적인 수준의 인격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람이 느끼는 행복하다는 느낌, 만족감은 서로를 그와같이 대하는데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따지고보면 결핍없는 사람은 또 없다.


완벽한 유년시기를 보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다들 마음 어딘가가 아프고 덜 아문 상처 한두개 씩은 가지고 살아간다


관계하고있는 사람들과 사랑하며 지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예수는 율법의 모든 계명을 포괄하는 '새 계명'으로써


'서로 사랑하십시오' 라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엄청나게 함축적인 말씀을 하셨다.


(요한13:34,35)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을 갖는 구절이다.





나를 믿고 사랑해줄 따뜻한 가족의 품이 있는 사람은


밖에서 모질고 아픈일을 겪어도 자신을 믿고 응원해줄 가족이 있다는 것에서


상처를 치유받고 힘을 얻어 금세 털고 일어나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특성은 정말이지 많은 가치를 가진듯 하다.







가을비가 내리는 밤


감히 사랑에 대해 떠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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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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